강하고 엄하시고, 무심하시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담도암으로 2011년 담도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나는 그때 막 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나에게는 비밀로 하고 

첫 면회 때도 안 오시던 아버지, 원래 무심하셔서 안 올 거라 생각했었다. 

전화로는 바쁘다며 미안하다는 아버지 목소리에 괜히 기대 안 했는데, 진짜 안 와서 서운 했는지 눈물이 났던 게 기억난다.

기적처럼 큰 수술이 성공해서 완치 판정을 받고, 완치 판정인 5년이 지나고 7년이 되던 해 2018년 1월에 담도암이 재발하였다. 

 

 그 원인은 스트레스로 판단이 된다..(아버지 다이어리에서 발견)

 

2017.11.05 내 생일에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큰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할아버지 죽음과 상속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심리 상담 쪽에서 일하는 큰 고모와 법 쪽에서 일했던 현재 교수인 셋째 고모부와 합작하여 아버지를 공격했다. 

 

 교수라는 고모부는 소송 걸겠다고 협박했고 큰 고모는 할머니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평생 6남매의 장남인 우리 아버지는 동생들을 다 데리고 나와, 신혼 생활도 없는 우리 불쌍한 엄마가 키워서 동생들 결혼시켰다. 할아버지는 쌀만 보내주셨고 , 우리 아버지는 평생 책임감 속에서 살았을 거다. 할아버지께서 88년도에 장남이라고 땅을 주셨는데 그 땅을 큰 고모가 달라고 할머니를 내세웠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이 땅은 고모들의 추억이 담긴 땅이라고, 널 줄지 안 줄지는 모르지만 내 영혼과 팔아서 너는 장손이니깐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 땅을 큰 고모가 할머니를 이용해서 자기가 모시고 산다고 자기 명의로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 엄마가 달라고 하니 그냥 주셨다. 그렇게 내 장손의 역할도 함께 줬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항상 경찰이라는 직업에 목을 메여 사셨다. 한 번도 일탈이란 없었고, 누군가 부탁할까 봐 숨겼고, 명예를 중시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소송이라니.. 아무튼 모든 고모에게 다 나눠 줬다.

근데 원래 나눠 주려고 했었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니깐 바로 이러니깐 좀 그렇더라. 

 

정신과 몸이 힘들던 그때 아버지의 넷째 고모는 다단계에 빠졌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믿어 주고 많이 사주셨다.

암도 낫고, 아픔도 싹 가시는 만병 통치약을 팔았다.

(넷째고모한테 이렇게 좋은거 왜 높은사람들이 안먹냐니깐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기를 많이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85몰이라는 쇼핑몰에 해피 xx 끝나는 물건을 파는데 이거를 처음에 회원 가입할 때 꽤나 큰 금액을 주고 등급을 사는 걸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물건을 사면 포인트가 적립되어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받는 시중 시세보다 30퍼센트 정도 비싸다. 이거를 아버지는 재테크라며 나와 누나 둘과 다른 고모 한 명한테 등급을 사주셨다 한 계정당 최소 천만 원 이상 으로 보면 될 듯싶다. 돌아가시기 전 유산이라며 주셨다. 

 

그다음에는 무슨 산소 물? (기적의 물)이라는 제품을 그 같은 고모가 팔았다. 아픈 부위에 바르면 암이 밖으로 튀어나온다고 한다. 그 물을 먹고 뭐 눈에 넣어도 되고 , 아주 만병 통치약이다. 

아무튼 한 50ml 정도 되는데 20만 원 하는 거 같다. 

아버지는 그걸 바르고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다. 물론 나한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걸 바른 일지를 보면 어지럽고 아프고 통증이 심하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 중도 포기하신 거 같다.

 

그다음에는 어디서 기체조 도인? 이라며 소개해주고 싶다고 시간당 몇십만 원 하는데 책이랑 팔았다. 

물론 아버지는 몇 발자국 못 움직이는데 아버지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계속된 전화와 문자로 아버지를 힘들게 했다. 결국 다 해주시고 잘 못 움직이시는 아버지는 수업도 1시간만 듣고 4시간 수업 돈만 내셨다. 

 

마지막으로 기적의 줄기세포라며 리웨이라는 제품인데 홍채 박사라며 데리고 와서 살다 살다 홍채 박사는 처음 들어본다. 

학술지 논문 찾아보려고 했는데 검색도 안되는데.. 그냥 똑똑 박사처럼 그런 박사인 거 같다. 

죽도 못 먹고 배에 복수 차는 사람한테 딱딱한 캡슐형 알약을 자기 같으면 10알씩은 먹고, 병원에서 나와서 자연 속에서 살 거라고 한다. 

아버지는 한통에 50만 원 하는 그놈의 기적의 줄기세포 검색해보니 건강기능식품에 사슴 태반이라고 한다. 350만 원어치 샀는데 한통은 다 드시고 환불해달라고 고모한테 다 돌려보냈는데 아직도 안 해준다. 

 

아버지가 현명하게 잘 대처하시는데 아프다 보니 판단이 흐려지신 거 같다.. 그렇게 드시고 아버지는 무리하게 퇴원하신다고 난리 치시다가 의사한테 겨우 허락받고 나가기로 한 날에 검붉은 피토를 뿜으시며 내 앞에서 쓰러지셨다. 

 

이때 우리 작은누나는 출산 임박 상태였다.

 

 아버지는 정신이 흐려지셨고 나한테 장례준비와 친구들 오면 어떻게 하고, 장례가 끝나면 손님들한테 문자 돌리라 하고 ,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했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로서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미리 납골당을 찾아보고, 상담받고 준비를 했다. 

아버지가 나한테 이제 마음대로 아파서 다행이라고 했다. 

여지껏 아픈 적을 본 적 없었다. 이게 아버지의 무게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마지막일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는 앞으로 의식을 잃을 것 같다고 하셨다. 정신력으로 버틸 거라고 했다. 우리 작은누나가 아기 낳을 때까지 버틴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고통 없이 돌아가시고 싶어 하셨다. 만약 정신도 잃고 아파한다면, 고통 없애주는 패치 좀 붙여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나빠지셨다.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피부는 노란색이 되었다. 

 

눈도 노란색이 되었다. 자꾸 온몸이 간지럽다고 한다.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주무실 때 눈이 다 감기지 않으신다.

 

혀에 반점이 생긴다.

 

이명이 생기고 아프다고 하신다.

 

가슴과 허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나중에는 외계인처럼 몸은 앙상한데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오셨다.

 

한 순간에 의식이 사라지셨다. 의식이 흐려지자 괴로운 듯 아파하는 신음을 내셨다. 밤새 아파하셨다.

우리가 걱정할까 봐 참았던 아픔을 이제 의식이 흐려지자 마음껏 표출하셨다. 

아빠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암 환자한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파도 티가 안 난다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가끔 의식을 차리시면 여기가 어딘지 물어봤다. 

나랑 엄마 보고 누구냐고 한다.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아직 내 옆에 계심에 감사했다. 

 

아버지가 너무 아파해서 전에 했던 말씀이 떠올라 패치를 물어봤더니

고통을 없애주는 패치보다 마약성 진통제가 낫다고 한다. 

그것도 잠시 나중에는 24시간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 호흡이 느려지고 의식이 더 약해진다고 한다. 

진통제를 적게 맞으면 계속 통증을 느끼고 아파한다.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그만 아팠으면 했다. 그래서 결정했고,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그 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나가셨다.  

아버지는 대단하시다. 의사가 이미 돌아가셨어야 하는데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며칠 더 사셨다. 전에 작은누나가 아기 낳을 때까지 버틴다고 했는데 누나가 아기 낳고 2일 버티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7년부터 나는 정말 정말 힘들었다. 

고모가 이상한 약 판다고 들었을 때도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약을 아버지가 믿고 사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아버지가 옳지 못한 판단을 하심에도 나는 믿어 드리고 싶었다.

고모는 말도 안되는 약을 정말 믿고 오빠를 위한 건지, 아니면 이익을 위한 행위였을까? 

고모는 아버지의 절규에 찬 고통의 신음소리를 듣고도 그런 약을 권할 수 있었을까?

우리 친척한테 화내고 욕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심을 알기에 그저 참기만했다.

 

아버지는 넷째 고모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친척이  싫다. 이제 가족도 아니라고 느껴진다.

아직 나는 많이 어린 것 같다.

장남인 우리 아버지의 입장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답답하다.

 

과거의 이날을 후회할까봐 정말 열심히 아버지를 간호했다. 

마지막도 봐서 다행이다. 

 

좋은 회사에서 꿈을 찾는다며 퇴사했지만, 문득 이러한 과정 속에 힘들어서 포기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자동차 ECU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보고싶다.

내가 생각한 모든 기능을 넣어 보고 싶다. 

미래의 중심이 되고 싶다. 

 

아버지 때문에 핑계일 수도 있지만, 많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하였다. 

이제 나에게 집중하면 될 거 같다.

아버지도 퇴사한다고 했을 때 잘해 보라고 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버지 그동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켜봐주세요.

아버지가 걱정하시던 우리 엄마 누나들 제가 꼭 지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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